양자 인터넷 시대 주소창의 자물쇠는 누가 잠그게 될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클라우드플레어가 웹사이트의 신분증을 직접 발급한다. 이를 위해 글로벌 디지털인증서 발급기관 글로벌사인의 루트 인증서 키 자료 일체를 인수하기로 했다. 루트 인증서는 인터넷 신뢰체계의 최상위 도장이다. 전세계 웹사이트 5곳 중 1곳 이상이 클라우드플레어의 DNS, 보안 서비스 등을 이용한다. 인터넷 관문을 운영하던 기업이 여권 발급창구까지 품게 되는 셈이다.

클라우드플레어는 글로벌사인(GlobalSign)에서 인수한 루트 인증서에 양자컴퓨터 시대의 새 인증서인 ‘머클트리 인증서(MTC)’를 얹을 계획이다. 기존 양자내성 서명을 인증서마다 붙이면 웹 연결 때 오가는 데이터가 급증한다. 클라우드플레어는 수많은 인증서를 하나의 변경 불가능한 명부에 묶고, 웹사이트가 그 명부에 등록돼 있다는 짧은 증명만 브라우저에 보내는 구조를 개발했다. 2027년 1분기부터 실제 발급에 들어간다는 목표다.

양자서명 하나가 현재 서명의 40배

이용자가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브라우저는 서버가 내민 TLS 인증서를 검사한다. 인증서에는 도메인 주소와 암호화에 사용하는 공개키가 함께 들어있다. 믿을 수 있는 인증기관이 두 정보를 확인해 서명해야 주소창에 자물쇠가 뜬다.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는 인터넷 인증서에 쓰이는 RSA와 ECDSA의 공개키에서 비밀키(개인키)를 계산해낼 수 있다. 공격자가 이 방식으로 인증기관의 서명키를 확보하면, 직접 만든 가짜 인증서에도 해당 인증기관이 발급한 것처럼 서명할 수 있다. 브라우저는 이 인증서를 정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공격자가 DNS 변조 등으로 이용자의 접속을 자신의 서버로 유도해도 보안 경고가 뜨지 않아, 이용자는 은행이나 정부기관의 실제 서버에 접속한 것으로 믿게 된다.

양자컴퓨터 공격을 막을 ML-DSA 같은 양자내성 전자서명은 데이터 크기가 훨씬 크다. IETF 문서에 따르면 ML-DSA-44는 1,312바이트의 공개키와 2,420바이트의 서명을 사용한다. ML-DSA-65 서명은 3,309바이트다. 현재 널리 쓰이는 Ed25519 서명은 64바이트에 그친다.

학생증 일일이 검사 대신 명부로 인식..크롬에서 효용 확인

현재는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 서버 인증서와 이를 발급한 중간 인증기관의 인증서가 함께 브라우저로 전달된다. 브라우저 안에는 최상위 발급기관의 루트 인증서가 미리 저장돼 있다. 브라우저는 서버 인증서부터 루트 인증서까지 이어진 서명을 차례로 검사한다. 양자내성 서명은 현재 서명보다 수십 배 크기 때문에 이 구조에 그대로 적용하면 웹사이트 접속 때 오가는 데이터가 늘어난다. 클라우드플레어는 그 규모가 현재보다 약 40배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MTC는 여러 웹사이트의 인증서를 ‘머클트리’라는 하나의 디지털 명부에 모은다. 인증기관은 인증서마다 양자내성 서명을 붙이지 않고, 새 인증서가 추가될 때마다 바뀌는 명부의 대표값에 서명한다. 거대한 인증서 묶음을 보내는 대신 자신의 도메인과 공개키가 그 명부에 들어 있다는 ‘포함 증명’을 보낸다. 포함 증명은 인증서 정보를 짧게 압축한 해시값의 경로다. 브라우저는 이 경로를 계산해 인증기관이 서명한 명부의 대표값과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학교가 학생증을 일일이 확인해 직인을 찍는 대신, 전체 학생 명부를 먼저 확인하고 학생은 명부에서 자기 이름의 위치를 보여주는 확인표를 내미는 방식을 연상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양자내성 서명을 사용하면서도 웹사이트 접속 때 전달하는 데이터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클라우드플레어는 Chrome Beta 146 이용자의 절반과 자사 무료 요금제 도메인 일부를 연결해 MTC를 시험했다. 시험용 인증기관이 발급한 MTC가 수십억 차례 전달됐는데, 브라우저가 최신 머클트리 정보를 가진 경우 서버는 공개키 1개, 서명 1개, 1킬로바이트 미만의 포함 증명만 보냈다. 연결 속도는 기존 인증서 체인보다 중앙값 기준 9% 빨랐다. 클라우드플레어는 첫 MTC 발급 시점을 2027년 1분기로 잡았다.

NYSE · NET

클라우드플레어 최근 3년 주가

2026.09$347.18
$50$100$150$200$250$300$3502023.102024.122025.102026.09$56.69$347.18
2023년 10월~2026년 9월 월말 종가 기준. 3년 동안 56.69달러에서 347.18달러로 512% 상승했다. DATA · Digrin

클라우드플레어 기업가치 올라갈까

무료 자동 인증서 시장에는 Let’s Encrypt라는 강자가 있다. 클라우드플레어에 따르면 Let’s Encrypt는 하루 약 1,000만 장의 인증서를 발급하고 5억 개가 넘는 사이트를 지원한다. 2025년에는 활성 인증서가 40억 장을 넘어섰다.

클라우드플레어는 이 집중도가 인터넷 전체의 운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대형 인증기관의 시스템이 멈추거나 발급 규정 위반으로 인증서가 대량 폐기되면 수많은 사이트가 동시에 대체 인증서를 구해야 한다. 클라우드플레어는 인증서를 무료로 자동 발급해 웹사이트 운영자가 Let’s Encrypt 외의 발급기관을 선택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한 인증기관에서 장애나 대량 폐기 사태가 발생해도 다른 기관에서 인증서를 발급받도록 선택지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클라우드플레어는 GlobalSign의 루트 CA 키 자료 인수 계약을 두 달에 걸쳐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구글과 애플, MS, 모질라가 운영하는 루트 인증서 프로그램에 가입을 신청했다. 이들 기업의 심사를 거쳐 클라우드플레어의 루트 인증서가 크롬, 사파리, 엣지,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와 각 운영체제의 신뢰 목록에 들어가면 자체 인증서를 발급할 수 있다.

클라우드플레어는 DNS로 웹사이트 주소를 찾고, 이용자와 가까운 서버에서 웹 콘텐츠를 전달해 속도를 높이는 콘텐츠전송망(CDN)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웹방화벽으로 DDoS 등 공격을 막아주는 보안 기업이기도 하다. 인증기관(CA)자격까지 얻으면 웹사이트로 가는 길 안내와 정보 전달, 보안 그리고 사이트가 진짜임을 보증하는 인증서 발급까지 책임지는 기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