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개발부터 실증과 사업화까지 지원하는 법적 체계를 가동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시행령을 11일부터 시행한다. 정부는 5년 단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연구개발과 실증, 인허가, 사업화를 연계해 지원한다.

개발기관·제작사·수요기업을 한 사업에 묶는다

시행령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공동 출자한 회사의 설립·운영비를 정부가 예산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원자로 개발기관과 제작사, 건설사, 발전사업자, 전력 수요기업이 개발 초기부터 사업계획과 투자금, 역할을 나누는 구조다. 기술개발을 마친 뒤 사업자를 찾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설계 단계부터 제작과 건설, 운영, 전력 판매를 함께 준비할 수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밀집한 지역은 ‘SMR 시스템 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할 수 있다. 특구에서는 연구시설과 시험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고 기술이전과 사업화, 전문인력 양성을 지원한다.

2035년 경수형 SMR 상용화 목표

정부는 경수형 SMR의 첫 상용화를 2035년까지 추진한다. 국내에서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을 중심으로 표준설계와 인허가, 실증사업을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고온가스로와 소듐냉각고속로, 용융염원자로 등 비경수형 SMR도 2030년대 실증을 목표로 기술개발을 진행한다. 실증 부지와 사업자, 착공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법 시행만으로 원자로가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상세설계와 안전성 검증, 부지 선정, 규제기관의 인허가와 실제 발주까지 이어져야 한다.

달기지와 선박으로 넓어지는 원자로 시장

SMR의 활용처는 육상 발전소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와 국내 기업들은 산업용 열과 선박 추진, 해양 발전설비, 우주기지 전원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달에서는 밤이 약 14일 동안 계속된다. 태양광발전만으로 거주 모듈과 통신시설, 자원 채굴장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장기간 연료를 교체하지 않고 전력을 공급하는 소형 원자로가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선박과 해양 분야에서는 HD한국조선해양이 미국 테라파워와 해양 원자력 기술과 공급망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용융염원자로를 이용한 해양 원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원자로 개발사와 조선사, 연료 공급업체, 선급기관이 하나의 사업구조를 만들면 원자력 추진선과 부유식 원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두산·한수원·건설사 역할 분담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 등 원전 주기기 제작능력을 갖췄다. 미국 뉴스케일파워를 비롯한 해외 SMR 개발사와 제작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 국내 실증사업이 시작되면 원자로 모듈 제작사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은 각각 발전소 운영과 원자로 계통설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해외 SMR 개발사와 사업을 추진하며 설계·조달·시공과 사업개발 경험을 쌓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열교환기와 원전 보조계통, 우진은 원전 계측기, 우리기술은 원전 감시·제어시스템을 공급한다. 실제 공급실적을 확보하려면 개발 중인 원자로에 부품을 넣고 시험과 운전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연구개발특구의 공동 시험설비는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안전등급 밸브와 센서, 제어기는 고온·고압 환경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장기간의 운전자료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경수형 원자로는 연료부터 확보해야

정부의 5년 단위 SMR 기본계획에는 핵연료 공급망 대책도 포함된다.

국내 경수형 SMR에서는 한전원자력연료가 연료 설계와 제조 분야에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원자로의 출력과 운전주기가 바뀌면 연료 집합체의 구조와 교체 방식도 새로 설계해야 한다.

비경수형 원자로는 연료 확보가 어렵다. 일부 고온가스로와 고속로는 기존 상업용 경수로보다 농축도가 높은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을 사용한다. 국내법으로 사업회사를 설립하더라도 연료 조달은 국제 핵비확산 규정과 해외 공급계약, 한미 원자력 협력체계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특별법의 성패는 첫 실증 발주가 결정

특별법은 개발기관과 제작사, 건설사와 수요기업을 하나의 사업에 묶을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법과 연구개발비만으로 산업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작실적을 쌓고 부품업체가 해외 공급망에 진입하려면 국내 실증로에 장비를 납품하고 실제 운전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의 설계계획이 부지 선정과 인허가, 발주로 이어지지 않으면 특별법의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제시한 2035년 상용화 목표는 결국 첫 실증사업을 언제 시작하느냐에 달렸다.